• Our Stories

    How we began

    Our History

    CIDA started as a small family support group that first gathered at a community conference in 2013. These families were dealing with various problems relating to family support, advocacy, and lack of service information due to language and cultural barriers within immigrant communities in New York. In response to these issues, Dr. Young Seh Bae, the CIDA founder and several parents initiated free special education service workshops, family events and support meetings in collaboration with the local organizations. In the process, many parent members expressed the urgent needs for preparing post-secondary life and inclusion opportunities for their children with disabilities. As such, CIDA, a grassroots organization, was officially incorporated in 2016, focusing on family support and workforce development for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 Hear from Our Families

    Making Disabilities a Possibility

    Why we started CIDA

    What we pursue has been very clear: self-determined, included and independent life of our children.

    CIDA's Worker Co-op

    Devin Bae, 17 year old talks about his brother with autism, his hope for the future and the community.

    Dr. Young Seh Bae, Executive Director is on TIM (Korean Language)

    "Choices and Opportunities." Dr. Bae shared a story of her children and self-determination at the Open Forum.

    Dr. Yoonju Lee, Associate Professor of CUNY is on TIM (Korean Language)

    "Stereo type and Prejudice." Dr. Lee shared her experiences as a person with a disability, and stigma situated in visible and invisible disabilities.  

  • Another Journey

    또하나의 여정

    This is a translated version of Dr. Young Seh Bae's writing

    on the Office of Special Education and Rehabilitative Services Blog
    U.S. Department of Education

    Original Version: https://sites.ed.gov/osers/2018/04/another-journey/

    배영서 대표의 연방 교육부 특수교육국 웹사이트 블로그의 글 번역본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폐를 가진 우리아들 유진이가 학군에서 제공하는 데이프로그램에 가기 위해 통학 버스에 올랐다. 지난 20년간 유진이와 나는 매일 아침마다 현관앞에 앉아 이렇게 통학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 오르면 유진이는 그의 특유의 높고 밝은 목소리로 “바이 맘!” 하고는 한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아침, 그날의 도전들과, 감정들과, 약속들 그리고 희망을 만나기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마치 예식과 같은 것이다.


    올해 6월이면 유진이는 학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완전히 졸업하게 된다. 유진이가 특수유아원을 들어간 그날 이후 우리가족이 시작한 여정을 생각할 때마다 감정이 북받쳐 오는 것은 어찌할수 가 없다. 그날, 나는 처참하게 울어대는 아이를 떼어 놓고 차안에 들어와 두시간을 울었다.
    그날 이후, 학교라는 곳은 유진이와 나 두사람 모두에게 힘든 곳이었다. 유진이가 학교에서 알파벳 철자를 배울때, 나는 끝없는 특수교육 단어 준말을 공부했다. 이세상 다른 특수교육 엄마들처럼, 우리아이가 학교 공부로 울면, 나는 운전대에 앉아 훌쩍 대었고, 유진이가 학교에서 행복한 날이면 나도 이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때론, 자폐를 가진 아이를 데리고, 그아이의 소위 “비정상적 행동” 문제에 부딪혀가며, 특수교육이라는 세계에서 방향을 찾아 간다는 것이 너무도 잔혹한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단지 우리의 영어 발음 때문 아니라, 다른 이들이 우리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지 않는 다고 느끼곤 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간 우리가족이 가진 가장 큰 걱정은 아직도 바뀐 것이 없다. 그것은 우리 유진이의 여정의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하는 것 – 유진이가 독립적으로 지역사회에서 통합되어 살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다른 수많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 모두가 공유하는 걱정일 것이다.


    우리가족은 우리 여정의 종착역으로 가기 위해 우리들이 탄 배의 돛을 많이 바꾸었다. 이제 우리가족들에게 “정상이하” 라던가 “사회적으로 부적응” 등의 말들은 우리아들의 앞을 헤쳐나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에 뒤로 해버린다. 그보다, “나는 자폐를 가진 사람입니다” 라고 자신감 있게 말할수 있는 젊은이의 놀라운 능력들과 긍적적인 가치들을, 우리는 가족으로서 좀더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시스템 위주보다, 유진이가 모든 서비스 계획의 중심에 있는 것을 확실히 하여야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유진이를 계획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주위를 바꾸는 일과 필요한 자원들을 찾는 데에 훨씬 더 효율적으로 변화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유진이의 지역사회의 삶에 대해서 완전히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족과 이 사회 사이에는, 유진이가 얼마나 “성공적”인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평가, 그리고, 성공라는 것의 정의자체에 대한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폐나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사회적 비용으로 측정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사회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사회적인 자산이라는 미래적 시각으로 볼수 있는 좀더 나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1975년 첫 연방장애인 교육법의 시행이후, 학교와 직장들이 장애인들에게 편의 제공할 수 역량을 있는 눈에 띠게 확장시키는 것을 보아왔다. 이러한 성과는 많은 부모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이나라의 지도자들의 많은 희생과 노력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노력의 유산은 다음 세대의 가족들, 교육인들과 지도자들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고, 우리가족이 우리의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앞으로 석달이라는 시간은 우리가족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 될것이다. 솔찍히 유진이가 더이상 학교를 가지 않는 다는 것을 생각 할 때마다 불안해진다. 더이상 IEP 미팅이 없을 것이고, 유진이를 데리러 오는 통학버스도 없을 것이다.


    유진이와 우리가족들은 이것이 우리 여정의 다음 단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진이가 우리배의 선장이 되어서 독립적이고 통합 된 지역사회에서의 삶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우리 가족의 방향을 지휘 할 것이다. 그때는 나는 울지 않는다. 대신, 나는 큰숨을 한번 들이쉬고, 가능성과 기회라는 또 하나의 흥분넘치는 바다를 향해 내자신을 준비할 것이다.